한국에서 적어도 20년이상 살아온 이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춘향이, 심청이, (홍)길동이를 아시느냐'고. 아마 십중팔구, 아니 열이면 열!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그인물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그리고 직접 원전(원서)을 읽어 보았느냐'고 말이다. 


- 출처 : 전북의 재발견 -


  필자의 경우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춘향은 사또나리의 수청을 거절하면서까지 한 남자만를 사모한 열녀'요. '심청은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목숨까지 바친 효녀'이며, '길동은 부패한 권력층을 속시원하게 골탕먹이고 불쌍한 이들을 도운 정의의 사도'라고 알고 있는 정도다. 물론 이마저도 원전은 커녕 어릴적 국어시간이나 TV프로그램을 통해 본 내용들의 짜집기일 뿐이다. 아마도 많은이들이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 출처 : 이화 -


  <심청전>, <홍길동전>, <춘향전>과 같은 한국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미지와 작품이 주는 교훈은 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정해져 있다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그런 해석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정원교수는 귀가 솔깃할만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이를테면 '심청이는 그녀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존재'라거나 '춘향과 이도령의 로맨스는 전혀 순수하지 않았으며' (홍)길동이가 행한 행동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정의로운 저항이라기 보다는 신분에 의해 앞날이 막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함이 목적이었다라는 것'이다. 


- 출처 : 강원도래요 -


  이쯤되면 저자가 혹시 소설가는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고전소설 연구자이며 현재는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에 있다.


  실은 '고전소설'이라는 명칭 자체도 우습기 짝이 없다. 무엇이 왜 '고전'이란 말인가? 우리의 현실에서 재해석되고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고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도서관에 꽃힌 그 많은 책들은 그냥 '옛날' 소설일 뿐이다. 적어도 나에게 그것이 고전이 되려면 <홍길동전>에서, <김원전>에서, <장화홍련전>에서 내가 미처 몰랐거나 지금 느끼고 있는 차별의 아픔, 성숙의 황홀함, 이기적인 환상들을 다시 맛볼 수 있어야 한다. - 8p



  주위에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를 살펴보면 외국고전소설을 읽는 이는 비교적 많은 반면 한국고전소설을 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의 원인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한가지 답을 얻을 수 있는데 그건 아마도 학창시절 국어과목을 통해 고전소설들을 시험'공부'로서 먼저 접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작품의 주제니 소재니 요약된 줄거리니 인물의 특징이니 그런것들을 죄다 적혀진대로, 설명해주는 대로 암기했으니 딱히 새롭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게 오히려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것들이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 고작 어린이용 TV프로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얻을 수 있다는 뻔한 '권선징악' 뿐이라는 것이다.


- 출처 : 라성빈 -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고전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주제는 권선징악'이라는 것이다.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하는' 것이 거의 모든 고전소설의 주제라니, 참 편리한 지식이 아닐 수 없다. 그 가르침에 따르자면, 우리는 고전소설에서 매우 당연한 도덕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우리 삶에서 당면한 여러 현실적인 모순들을 이해하고 자긍심을 갖게 될 수는 없다. - 6p


- 출처 : 한우리양산맘 -


  고전이란 무엇인가. 변해가는 시대를 초월하여 매번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인류에게 꾸준히 영향을 주는 위대한 작품들이 아니던가. 헌데 우리는 고전소설의 텍스트(원전 and 원서)를 각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기는 커녕 기존의 해석만을 정확히 '암기'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우리의 자랑스런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이쯤되면 뭔가 좀 낯뜨거워 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고전소설에 대한 틀에 박힌 해석들은 작품을 읽기도 전에 이미 독자의 사고방식과 작품자체를 틀에 박아 버리고 있다.



  저자는 <장화홍련전>부터 <전우치전>까지 총 13가지 작품에 대한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기존의 해석들을 죄다 풀어헤친 후 원전 자체를 '다시 읽고' 느낀 진솔한 해석을 펼쳐 놓는다. '왜 아무도 장화의 계모를 위로하지 않는지.', '애비가 되가지고 심봉사는 청이가 팔려가는 것을 왜 끝까지 막으려 하지 않았는지.', '이도령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춘향이를 순수(?)하게 사랑했는지.'등등 



  많은 질문들의 꼬리를 문채 추적해 나가며 결국 기존의 해석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허술한 것이었는지를 밝혀낸다. 결국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원전 일독의 중요성이다. 왜 고전을 읽을때 요약본이 아닌, 번역본이 아닌 원전을 읽으라고 하는지를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필자에게 있었다. 13가지 작품 중 정말 유명한 <심청전>이나 <춘향전>, <홍길동전>, <토끼전>등과 같은 경우는 대충 줄거리와 기존의 해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 출처 : 탐서가 -


  하지만 <적벽가>나 <황새결송>, <김현감호>, <김원전>과같은 경우는 전혀 처음 접한 작품이라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식때문에 흥미도가 많이 떨어졌다. 물론 상대적일 뿐 '우리 고전작품 중에도 이런 재미난 소설들이 많구나'라는 아주 좋은 경험을 하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좋은점은 바로 우리 고전소설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미 13작품 중 <장화홍련전>, <적벽가>, <장끼전>, <지귀설화>, <김원전>등을 비롯한 총 8작품을 위시리스트에 담아 놓았다. 



  <전을 범하다>와 같이 고전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작품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꼭 원전을 읽어야 함을 잊어선 안된다. 원전을 읽기 전에는 그 작품에 대해 논하지 말라.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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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한석씨 Careful.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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