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장정일의 공부>(이하 공부)라는 책을 통해서다. 당시만 해도 나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완전 무식한 이었는데 뜬금없이 교양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 바로 <공부>였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아마 이해도 못했을꺼다) '머리말'에서 '중용'을 거론하며 그가 했던 이야기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자신의 무지를 밝히기 위해 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분명 '무지'라고 말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고 "마흔이 넘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정도면 엄청 열심히 했겠구나"라고 생각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공부>를 출판하기 13년전에 쓴 <장정일의 독서일기1>을 읽은 지금, 나는 장정일에게 완전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딱 지금 내 나이 정도에 쓴 그의 첫번째 일기장은 '무지'는 커녕 무한히 샘솟는 '유식'의 고난도 쇼다.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장정일은 2011년 기준 <장정일의 독서일기 1~7>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2>권까지 서평집만 무려 9권이나 쓴 인물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 어린시절 꿈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독서광이기도 하다.(물론 대부분의 작가는 독서광이다)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없이 읽는" 꿈을 가졌던 그였으니, 30년 동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았을까? 처음에 나는 "겨우 내 또래 정도의 나이에 이렇게 엄청난 내공을 가지고 있다니!!"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의 생각이었다. 사실 서른이면 교수가 될 수도 있는 나이가 아닌가...... 오히려 이 나이에 이 정도 밖에 안되는 내가 별난 거다;;


  이 책에서 소개 된 책들은 문학의 비중이 크지만 각 책들에서 가지를 치는 주제는 다양한 분야를 막론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기의 형식을 띄다보니 독자의 수준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배려는 커녕 아예 없다고 생각하며 썼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초보 독서가에게는 이 책을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시작부터 독서에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소개되는 책이 젊은 독자들에게는 너무 옛날 책인데다 낯선 책이라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소개된 책 중에 스테디셀러가 된 책은 거의 없고, 내가 읽은 책 역시 단 한 권도 없으며, 제목이나마 들어봤다 싶은 책은 겨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 이 두번째 문제는 자연스럽게 '고전'이나 '스테디셀러'가 없다는 아쉬움으로 이어진다. 그가 쓰는 고전에 대한 서평을 읽고 싶다!! 


  장정일표 서평의 특징은 호불호가 명확하다는 것이다.(특히 불不;;) 어떤 블로거는 초기 독서일기가 '서슬퍼런 독설의 칼날'을 품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내가 봤을때 적어도 1권에서는 그런 서슬퍼런 칼날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저 "거침없이 비평한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 출처 : 하드데이즈 나이트 -


  이유는 제시하지 않고 그냥 '싫다'고만 하고 넘어가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중요한건 그 근거의 내공이 상당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나에게 없는 경우가 '꽤 약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쿨하게(?) 넘어갔다. 때문에 이 책은 초반부터 '좌절감'을 선사했지만 뒤로 갈수록 '도전정신'도 고취시켰다. "내 기필코 다음에 재독할때는 죄다 이해하고 말리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ㅡ,.ㅡ;;;


  '어떤 부분을 어떤 식으로 비평해야 하는가'라는 요령(?)에 중점을 두고 읽은 나는 '비평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내공(배경지식)부터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정일은 "내가 읽지 않는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라고 했으며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장정일의 그 부러운(?) '내공'과 '비평'은 생활화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의 세상에 존재하게 된, 수많은 책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의 내공을 구성하는데 영향을 준 수많은 책들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내공'과 '비평의 날'을 부러워 해봤자 소용없는 짓인 것이다. 이제 쓸데없는 부러움과 탐욕은 버리고 독서와 글쓰기를 생활화해서 보다 많은 책들을 내 세상으로 소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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